2009년 09월 23일
이글루스 검색기능은 장식인가?
# by | 2009/09/23 23:25 | 일상 | 트랙백 | 덧글(10)
# by | 2009/09/23 23:25 | 일상 | 트랙백 | 덧글(10)
# by | 2009/09/17 15:21 | 트랙백







# by | 2009/08/01 16:58 | 기술 | 트랙백
sudo port -v install gnome-themes
sudo port -v install gtk-nodoka-engine
sudo port -v install gtk-smooth-engine
sudo port -v install gtk2-aurora
sudo port -v install gtk2-clearlooks
sudo port -v install gtk2-extra
sudo port -v install gtk2-industrial
sudo port -v install gtk2-murrine
11. Theme switch를 설치한다. sudo port -v install gtk-theme-switch
12. 테마를 선택한다. switch2
13. glade3를 설치한다. sudo port -v install glade3
14. glade 테스트 glade-3
설치가 바이너리 설치가 아닌 소스컴파일 설치가 대부분이라 맥북 2.4GHz Core 2 duo 4GB 환경에서 한 3~4시간쯤 걸리니 느긋하게 기다리면서 작업해 나가면 된다.
특히 시간이 많이 걸리는 부분이 py25-gtk 와 glade3 이다. 뭐 의존하는 모듈들이 한두개가 아닌지라 ^^ # by | 2009/07/21 14:54 | 기술 | 트랙백
gzip은 여러개의 파일을 묶는 기능이 없다.
따라서 여러개의 파일을 묶어서 압축하려면 tar와 같이 사용하던가 zip같은 다른 압축포멧을 사용해야 한다.
꺼꾸로 tar는 묶는 기능만 있고 압축하는 기능이 없다. 물론 z 옵션을 주어 다 묶은후 gzip으로 압축하게 하는 기능은 있다.
그럼 왜 이렇게 불편한 tar를 쓸까?
tar는 해당 파일의 심볼릭 링크나, user id, group, permission등 파일 메타정보도 모두 저장하고 복구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유닉스 시스템의 파일들을 정상적으로 복구시키기 위해서 tar를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리눅스에서 FAT32에 tar 파일을 풀때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는 FAT32 파티션을 마운트하면 해당 파티션은 마운트 한 유저의 권한, 소유로 마운트되게 된다. (user id, group id등) 일반적으로 root이다.
여기에 tar 파일을 풀려고 한다면 tar는 해당 파일에서 파일을 추출해 내고,
추출해 낸 파일을 tar에 기록된 원래 압축한 사용자의 user id, group으로 변경시키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FAT32 파일시스템은 소유에대한 정보를 저장하지 않는 파일 시스템이며 이에대한 변경시도는 실패하며 결국 root:root로 남아 있게 된다.
tar는 user id , group id 변경 시도가 실패했으므로 압축해제를 중단시키게 된다.
따라서 tar로 FAT32에 압축을 풀기 위해서는 원본이 root:root이 되어 있거나
풀기옵션에 소유권을 복구하지 않게하는 옵션을 주어야 한다.
# by | 2009/06/18 17:38 | 트랙백
# by | 2009/06/18 17:26 | 트랙백
| 왜이리들 기본기가 떨어지는 겁니까.. 파이널에서 이런 수비라니.. 자리잡는법도 모르는거 같고 가드가 일부러 어려운 자리가서 패스하고.. 공이 떨어졌는데 멍하니 보고있고, 공가진 사람이 페인트존에 들어왔는데 쳐다보고 있고.. 진짜 수준 많이 떨어졌네요.. |
# by | 2009/06/11 09:38 | 트랙백 | 덧글(4)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다.
정치는 별개 아니다, 서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이슈에 대해 대응해나가것 자체가 정치이다.
그러니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마세요”라던가 하는 부류의 말들이 얼마나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것인가는 좀 생각들좀 해보기 바란다.
정치가 이슈에 대한 대응이라면 정치력은 무었일까?
간단히 말하면 이슈에 대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의 결과를 도출해내는 힘을 말한다.
정치력의 발휘에서 “멍청한 애송이”와 “쩔어빠진 늙은이”가 차이가 나는 것이다.
젊은이는 이상을 말한다. 아는게 그것밖에 없거든. 젊은이는 자신의 의견이 아닌, 배운 의견을 말하게 되어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생각하고(심화시키고) 표현”하는 것을 교육이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가 특히 심하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자신의 이상에서 어긋나면 그것은 틀린것“이라고 생각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취향(이상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게 진짜 이상일리가 없으니)에 딱 맞는 정당이, 정치인이 없다고 정치에서 눈을 돌린다.
다음을 보고 오자( 저작권이 있는 그림이라 링크만 건다)
http://kr.engadget.com/2009/05/25/gadget-man/
세상에 자신의 취향에 딱 맞는 정치인, 정당, 정치사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잘 생각해보자.
자기 자신조차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데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정당, 정치인, 정치사상 그런게 있을거 같은가?
진실로 대학생을 대변하는 정치조직? 이게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모른다면 참 할말이 없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쩔어빠진 늙은이“들은 자신에 취향에 딱 맞지는 않은 정당을 지지하여 ”큰 규모의 정치력을 형성”한다.
그리고나서 그 형성된 정치력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이용한다.
결국 정치에서는 정치력이 큰쪽이 더 큰 파이를 얻어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단지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치를 포기하면서
그래서 아주 작디 작은 정치력만을 발휘하면서 심지어는 투표조차 하지 않으면서(그걸 또 자랑으로 생각하면서)
“왜 나에게 돌아오는 파이는 이렇게 작은가”라고 외치는것은 참으로 공허하다.
# by | 2009/06/02 12:37 | 트랙백
# by | 2009/05/27 13:07 | 트랙백 | 덧글(1)
# by | 2009/05/23 12:19 | 생각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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